둘째아이가 말이 아주 늦었어요.
두살이 되어도 엄마라는 말밖에 못했고,
세살이 되어도 겨우 몇마디 밖에 못하더라구요.
세살쯤에 남편이 도서관에 갔다가
어린이 수화비디오를 빌려왔어요.
같이 봤는데 재미있고 쉽게 잘 가르쳐주더라구요.
다 같이 앉아서 매일 비디오를 봤어요.
어느 날 둘째가 그림책을 보다가 수화로 "고릴라"라고 하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고릴라, 아구~ 우리 이쁜이~ 고릴라라고 하는 거야?"라고 말을 했더니
엄청 좋아하는 거에요.
그동안 자기가 말도 잘 못하고 우리가 자기가 말하고 싶은 걸 잘 못알아들으니
어린 마음에 자기도 답답했었나봐요.
그 "고릴라"라는 단어 하나를 수화로 표현하고 우리가 알아들으니 엄청 좋았나봐요.
그렇게 목이 말라요, 배가 고파요, 뭐 간단한 것들을 수화로 배워봤어요.
그러다가 4살에 어린이집에 보냈는데, 걱정이 되더라구요.
말을 잘 못하는데 적응은 잘하려는지,
친구들한테 놀림은 받지 않으려는지...
다행히 선생님들도 좋으시고, 아이들도 착해서
잘 적응을 하고 친구들하고 잘지내더군요.
그래도 네살이 되어도 말을 잘 못하니 걱정이 되어서
검사를 받으러 갔어요.
문제가 있는 거면 치료를 받아야 하니까요.
검사를 받으러 가서 아이들이 말이 늦는 이유가 뭘까요 하고 물어보니
부모나 가족 중에 말이 늦었던 사람이 있었거나,
부모나 아기를 돌봐주는 다른 사람들이 말수가 별로 없거나하면
아이들이 언어에 노출되는 시간이 적어서 말이 늦게 될 수도 있고,
서로 대화하는 형식의 언어에 노출되는게 아니고 일방적인 언어에 노출,
예를 들어, 부모가 아기에게 말을 걸고 아이의 옹알이나 반응에 대응을 해주지않고,
TV나 인터넷 동영상처럼 상호관계없이 일방적으로 말을 전달하는 언어에 노출되는 시간이
많으면 아이가 말문이 늦게 터진다고 하더라구요.
하지만 그 외에 다른 문제가 있을 수도 있으니 검사를 받으면 도움이 된다며
검사 받으러 잘 왔다고 하더군요.
검사 결과 다행히 인지능력이나 뭐 이런 문제는 없었는데,
이중언어(영어와 한국어)를 동시에 접하다보니
약간의 혼란이 생겨서 그렇다고...
시간이 지나면 영어와 한국어의 개념이 잡혀서 괜찮아진다면서
아이의 언어 개념이 자리잡을 때까지는 집에서는 한국말만 쓰라고 하더라구요.
어차피 학교에 가면 영어만 듣게 되니까요.
다행이다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말이 늘게 된 계기가 있었어요.
남편과 제가 크리스마스 공연하는 데 참가하게 되어서
연습하는 동안 몇 번 정도 한두시간 정도 남편친구가 아이들을 봐준적이 있었거든요.
남편친구가 아이들을 봐주면서 플레이 스테이션으로 같이 게임을 했나봐요.
첫째아이는 말을 잘하니 자기가 하고 싶은 게임을 얘기하면
그 게임을 할 수 있었는데,
둘째는 말을 못하니 자기가 하고 싶은 게임을 못했나봐요.
어느 날은 남편친구 집에 가고 있는데
둘째가 차안에서 뭘 자꾸 중얼거리고 있는거에요.
뭐지? 하고 자세히 들어보니
"Uncle, Batman game, please." 이걸 연습하고 있더라구요.
배트맨 레고게임을 너무 하고 싶었는데,
그동안 말을 못해서 형이 원하는 게임만 했었나봐요.
그래서 그날은 도착할때까지 계속 "Uncle, Batman game, please"를 더듬더듬 연습하더라구요.
나중에 물어보니, 결국 배트맨 레고게임을 하게 됐다고 하더라구요.
그 다음부터 자신감이 생겼는지 또 다른게임 말하는거 연습하고,
그러다가 말이 늘더라구요.
지금은 말을 잘해요. 뭐 가끔 사오정끼가 있긴하지만...
옛날 생각하면 대견해요.
그리고 그 후부터 아기들이 태어나면 어린이 수화 비디오를 틀어서 같이 봤어요.
그러면 아이들이 말을 시작하기 전에 수화로
자기가 원하는 거, 예를 들어 물, 우유, 크래커, 배고파요, 뭐 이런 간단한 건 수화로 표현하더라구요.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요,
막내가 한 살 조금 넘어서 병원에 정기검사 받으러 갔는데,
의사가 아기가 의사표현은 하는지 말은 할 줄 아는게 있는지 물었어요.
그래서 이런이런 단어는 말할 줄 안다.
그리고 수화를 조금 배워서 이런 단어는 말하지 못하면 수화로 표현한다 라고 얘기했더니,
의사가 "아기가 귀가 안들리나요?"하고 물어보는거에요.
"아니, 그게 아니라, 아기가 아직 말을 막 배우는 단계라서
아직 단어를 잘 말하지 못하는 건 수화로 표현하는 거다." 했던 적이 있어요.
아기들이 자기들한테 필요한건 빨리 배우더라구요.
요즘은 홈스쿨 수업 중에 수화수업이 있길래
아이들 세명이 등록해서 듣고 있는 중이에요.
'일상의 에피소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당개 삼 년이면... (0) | 2020.09.10 |
---|---|
엄마, 예뻐~ (0) | 2020.09.10 |
아기 낳기 전엔 몰랐던 것들 (0) | 2020.08.28 |
속상할 때 4. 유아 배앓이 (Colic) (0) | 2020.08.18 |
내 청력나이는...? (0) | 2020.08.15 |